(작가 인터뷰) 통섭학자 최재천....."문-이과 나누는 시대 완전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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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기석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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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①] 최재천의 말, 말, 말
- "문제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문제를 빠른 속도로 푸는 것만 훈련을 시켰기 때문이에요. 그냥 계산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가 대한민국에서 나올 수 없었던 거고요."
- "개발을 한다는 건 자연의 모습을 바꾸는 거잖아요. 그럼 안 바꾸는 걸 전제로 하고, 왜 바꿔야 되는지 그쪽에서 설명하고 반대쪽을 설득해야 되는데, 우리는 완전히 거꾸로 됐어요."
- "이런 식으로 가면 몇 십 년 안에 우리나라 전체가 다 서울이 될 거예요. 다 콘크리트가 되는 거죠. (줄임) 이제는 진짜 바뀌어야 돼요. 정부는 언제나 착각하고 언제나 느려요."
[프리즘②] 통섭적 인재를 키우기 위한 열 가지 생각거리
▷ 최재천은 누구? : 한국 자연과학계의 거장. 국립생태원 원장이며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다. 공적인 직함만큼이나 '통섭의 대부'라는 별명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책 <통섭>을 번역 출간한 것이 2005년.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식의 전문성이 지배하던 한국 사회에, 학문 간 '비자'를 없애야 한다는 통섭의 길을 제시했다.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국제생명다양성협약(CBD) 의장, 무동학교 교장 등을 맡고 있다. 스스로 ‘책벌(冊閥)’이라 말하는 독서가이자, ‘시인의 마음을 가진 과학자’로 통하는 글쟁이이기도 하다.
▷ 어떤 책을 냈나 : 그는 통섭적 인재, 즉 ‘문과적 소양을 갖춘 이과적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늘 목소리를 높여왔다. <생각의 탐험>(움직이는서재/ 2016년)은 그런 인재를 키우기 위해 고민해야 할 열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인간이란', '생물다양성', '환경과 기후 변화', '그린 비즈니스', '의생학', '반려동물', '통섭', '배움과 교육', '기획 독서', '남녀의 콜라보'.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친절하게 이야기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 읽게 만드는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 인터뷰 뒷이야기 : 8월 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 있는 연구실에서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을 만났다. <생각의 탐험>에서 읽은 통섭의 길, 생명의 길, 그리고 '책벌' 최재천의 독서 이야기와 최근 화제가 된 '무릎 꿇은 시상식' 사진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인터뷰 도중 '질문이 어렵다'는 말을 몇 번 했다. 별로 그렇게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는데도 그는 어렵다는 말과 함께 신중하게 숙고했고, 허허 웃으며 꺼내놓은 그의 이야기는 진솔하게 시작해 명쾌하게 끝났다.
[프리즘③] 일문일답 들여다보기
Q <생각의 탐험>의 주제는 ‘통섭적 인재를 키우기 위한 열 가지 생각거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열 가지 화두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제일 어려운 질문을 하셨네요.(웃음) 지금 우리 시대에 통섭이다 융합이다 말이 많은데, 기대감들이 너무 큰 것 같아요. '융합했으면 스티브 잡스가 나와야 하는 거 아냐?' 새로운 노력은 시도로 끝날 수도 있는데, 그런 걸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위험한 태도들을 갖고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과-이과로 나뉘어서 한쪽 지식은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그걸 이제 넘나들려고 하는데, 그 자체가 대단하고 아름다운 거예요. 이 책의 열 가지 생각거리들이 결코 완벽하게 귀가 딱딱 맞는 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단계에서는) 해볼 만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Q 한국 사회에 통섭의 화두를 던진 지 약 1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여기저기서 유행어처럼 통섭이란 말을 많이 듣게 됐고,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빨리 통섭의 결과물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통섭의 길' 어디쯤에 와 있다고 보시나요?
대단히 아프지만, 아직도 출발선 근처에서 우왕좌왕 웅성웅성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끔 강연에서 망발(?)을 좀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미국 사람인 게 너무 억울하다. 한국 사람이어야지. 우리는 웬만한 거 다 양푼에 넣고 비벼먹는 사람들인데. 아이폰은 융합의 산물, 비벼서 만든 건데, 미국 사람이 아이폰을 만들어낼 때 우린 뭘 하고 있었나.'
왜 그런가? 교육이 달라서 그런 거죠. 우리는 애당초 공부 못하는 놈, 잘하는 놈 갈라놨고, 문제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문제를 빠른 속도로 푸는 것만 훈련을 시켰기 때문이에요. 그냥 계산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가 대한민국에서 나올 수 없었던 거고요, 또 문과든 이과든 인구의 절반 중에서 나와야 하니까 우리는 애당초 안 되는 일이었죠.
그래도 2018년부터는 문-이과 장벽을 없앤다니까 다음 세대는 좀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때가 되면 자연스러운 통섭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뿌듯하게 생각하는 건, 이제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우물을 파야지!'라는 말은 더 이상 안 한다는 점입니다. '두루두루 소통하고 소양을 갖춰야 되는 거야.' 그렇게 얘기들 하고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Q 오늘날은 통섭의 시대이기도 하고, 동시에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최 원장님은 '시인의 마음을 가진 과학자'를 새로운 인재상으로 강조하셨는데, 지금 시대의 이러한 아이러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제가 '무동학교'의 교장으로 추대를 받았습니다. 문과 졸업생들이 너무 취직이 안 되니까, 강의도 해주고 상담도 해주고 그 친구들을 무동을 태워주자는 의미의 학교예요. 이제 문과와 이과를 나눠서 공부하는 시대는 완벽하게 끝이 났거든요. 한 개인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양쪽을 다 공부해야 한다는 거죠. 미래학자들은, 한 개인이 평생에 직업을 대여섯 번 이상 바꿔야 할 거라고 말해요. 문과만 공부해서 그 기회들을 다 잡을 수 있겠느냐? 못하죠.
그런데 70대에 가서 양자역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면, 못해요. 이과 공부는 10대, 20대에 하지 않으면 실기(失期)하고 말아요. 결국은 모든 사람이 다 이과 공부를 해야 된다는 거죠. '시인의 마음을 가진 과학자'를 거꾸로 하면, '과학적 소양을 갖춘 시인'이 되겠죠. 그런데 '과학적 소양을 갖춘 시인'으로는 부족하고요, '시인의 마음을 가진 과학자'라야 가능합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자 72명이 드보르자크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곡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바이올린 연주자 한 명이 조용히 일어나 악기를 챙겨 무대를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잠시 후 또 다른 연주자가 마찬가지로 악기를 챙겨 무대를 떠났습니다. 연주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악기와 연주자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연주자 12명이 남았을 무렵에는 지휘자마저 무대를 떠나고, 남은 이들이 차례로 그 뒤를 따랐습니다.(줄임)
우리 생태계는 젠가 게임의 끝처럼 굉음을 내며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악기들이 빠져나가는 와중에도 연주가 계속되는 것처럼 조용하게 끝을 향해 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는 단선적이고 조용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연주를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 <생각의 탐험> 47~48쪽
Q 책에서, 72명의 오케스트라 연주자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럼 우리의 현실에 한번 대입해보겠습니다. 지금 이 무대에는 몇 명의 연주자가 남아 있다고 보십니까?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잘 모르겠네요. 다만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훨씬 적은 숫자가 남았으리라 하는 생각은 듭니다. 좁은 국토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다 보니까, 자연환경을 너무나 많이 훼손하며 사는 거죠. 그래도 이 정도로 유지했다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젠가' 게임 얘기를 종종 하는데, 저는 자연 생태계가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체적으로 아직 많이 남은 것처럼 보이는데 거기서 굉장히 중요한 어떤 종(種)이 멸종하면, 굉장히 중요한 직육면체 블록 하나가 빠지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거죠. 사실은 72명의 오케스트라 중에 얼마나 남아 있느냐 하는 것보다는, 어떤 악기가 남아 있느냐 하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어요. 결정적인 악기가 빠져나가면 음악이 안 되잖아요. 저희는 지금 그 악기의 연주자가 무대 밖으로 자꾸 나가려 하는 위기에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Q 책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우리 국민과 기업, 그리고 정부의 인식 온도차를 지적했습니다. 국가기관인 국립생태원 원장이시기 때문에, 환경위기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인식 정도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체감하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어떻습니까?
거의 모든 환경문제에 대해서 정부가 제일 뒤처진다고 생각해요. 항상 제일 늦어요. 국무회의를 보면, 경제발전 시켜야 한다는 사람들만 쫙 있잖아요. 환경부 장관처럼 외로운 사람이 있을까 싶어요. 그래서 미국은 환경보호국(EPA)을 만들어서 부통령 직속으로 갖다놨어요. 국무회의의 결정을 압도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거죠.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 두 번째 임기 때 대통령 직속으로 격상시켰어요.
그래서 저도 십여 년 전부터 '두 사람의 부총리를 세우자'는 주장을 했어요. 한 명은 경제개발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서들의 대표, 한 명은 복지·환경·교육 등 삶의 질을 생각해야 한다는 부서들의 대표. 둘이 만날 싸움시키고, 대통령은 그걸 쭉 지켜본 뒤에 한쪽을 슬쩍 편들어주면서 결정을 하라는 거죠. 지금도 어쨌든 부총리가 둘이긴 한데,(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부총리, 교육부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겸한다 – 기자 주), 편이 어떻게 갈라지는지는 잘 모르겠고 헷갈려요.
제가 국립생태원의 미션 문구에 '생태문화'라는 말을 썼어요.("세계적인 생태학 연구를 바탕으로 자연환경의 보전과 생태문화 확산을 도모하여 지속가능한 미래 구현에 기여한다.") 생태문화는 개발문화의 반대 개념으로 만든 말이거든요. 우리나라 문화는 한마디로 개발문화예요. 개발을 한다는 건 자연의 모습을 바꾸는 거잖아요. 그럼 안 바꾸는 걸 전제로 하고, 그걸 바꾸려면 '바꿔도 되냐'고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왜 바꿔야 되는지 그쪽에서 설명하고 반대쪽을 설득해야 되는데, 우리는 완전히 거꾸로 됐어요.
이런 식으로 가면 불과 몇 십 년 안에 우리나라 전체가 다 서울이 될 거예요. 전체가 다 콘크리트가 되는 거죠. 이제는 생태가 먼저고, 그걸 개발하자는 사람들이 국민들한테 빌어야죠. 우리나라에서 큰 국책사업을 하려면 경제성 예타(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잖아요. 그런데 왜 경제성 예타만 받냐, 생태성 예타도 받아야 된다고 제가 주장했어요. 그 사업을 했을 때 환경이 과연 유지될 건지, 국립생태원에서 생태성 예타도 받으라는 겁니다. 이제는 진짜 바뀌어야 돼요. 그런 점에서 정부는 언제나 착각하고 언제나 느려요. 그중 최고로 바보 같은 최악의 정부가 MB 정부였고요.
자녀를 통섭적 인재로 키우려면 넓게 볼 줄 아는 시각을 키워 주어야 합니다. 넓게 보려면 당장 눈앞에 닥친 목표만 보게 하기보단 주변 사물에도 눈을 돌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의 눈과 귀를 막고 앞으로만 달리라고 보채니 아이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법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넓은 시각은 시킨다고 해서, 참고서를 읽으라고 해서 갖춰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직접 고개를 돌려 이곳저곳 둘러보아야 비로소 트이고 열리는 것입니다. (줄임)
사교육은 오로지 처음 몇 경기만을 위해 무리해서 말을 조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법이 아니라 어울려서 살아가는 법, 변화에 적응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 70년을 버틸 수 있습니다. 혹독한 조련으로 수명이 짧은 단거리 경주마를 길러 내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합니다. - <생각의 탐험> 137~138쪽
Q 최 원장님은 스스로를 '책벌'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독서가이신데요, 수많은 책의 추천사와 서평을 부탁받는다 들었습니다. 좋은 책에 대한 기준이 누구보다 분명하지 않으면 곤란할 것 같은데요, 그 기준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어렵다.(웃음) 실제로 굉장히 많이 요청이 오거든요. 그러면 며칠 시간을 달라고 하죠. 제가 추천사를 쓰면 그 책 어딘가에 제 이름이 박힐 텐데, 제 이름을 박아도 되는 책인지 며칠 평가를 하고 답을 드리죠. 구태의연한 책에는 별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요. 참신한,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보는 책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게(책이) 다 나무인데, 쓸데없는 책을 만드는 건 좋은 일이 아니잖아요. 어떤 때는 ‘이거 다 읽어본 얘기인데 뭐하러 책으로 냈나’ 싶을 때도 있거든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렇고 그런 책들은 저를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 같아요.
Q 얼마 전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습니다. 6월 15일 '우리 들꽃 포토 에세이 공모전' 시상식 사진이었는데요, 초등학생에게 시상을 하면서 무릎을 꿇고 있는 최 원장님의 사진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 사진이 화제가 되는 걸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좀 민망하더라고요. 제 친구가 인터넷 기사 댓글을 캡처해서 보내줬더라고요. "나는 이런 넘들 제일 싫다. 연출하는 넘들." 그러면서 제 친구가 "연출했냐?"라고 물어보던데, 저는 지금도 제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나요.(웃음) 사실 제가 안사람한테 만날 야단맞고 사는데, 배려할 줄 모르고 베풀 줄 모른다고요. 전 배려라는 말이, 베푼다는 말이 거북해요. '내가 너보다 잘나고 많이 가졌으니까 내가 너 챙겨줄게'라는 뜻처럼 들려요. 베풂보다는 나눔이 좋고 배려보다는 동감이 좋아요. 그냥 눈높이 같이하고 같이 울어주고 같이 고민해주고 그러는 거죠.
그날도 그 조그만 아이가 큰 아이들 사이에서 쭈뼛쭈뼛거리더라고요. "몇 학년이야?" 하고 물어보려고 허리를 굽히다가 '그냥 마주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제가 무릎을 꿇으니까 이 녀석이 처음에는 흠칫 하고 뒤로 물러나더라고요.(웃음) 제가 웃으면서 얘기하니까, (아이도) 싹 웃으면서 다가오더라고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물론 제가 만날 무릎 꿇고 사는 건 아니지만.(웃음) 제가 국립생태원장 2년 반 넘어 했는데, 나중에 그만둘 때 직원들한테 한마디 하게 될 거 아니에요. 그때 "나는 한 번도 여러분한테 군림하지 않았다" 그 얘기는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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